'중금속 밥그릇'은 유해물질 억울하다... 이유는 ?
우리는 황사·미세먼지, 심지어 생활 속 플라스틱 제품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소식을 종종 접한다. 그때마다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기도 한다. 중금속이란 비교적 무거운 금속이라는 의미인데, '무거운 금속'이 건강에 해를 주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2002년 화학 분야의 국제기구인 IUPAC(국제순수 및 응용화학연합)에서 중금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제안이 나왔다.
화학자와 일반인 사이에 중금속에 대한 이해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화학자들은 중금속을 화학실험에 촉매로 미량 사용하는데, 어떤 중금속은 금보다 값이 비싸서 화학자들에게 중금속은 유해한 물질이라기보다는 비싸고 희귀한 금속으로 통한다.
비싸고 귀한 중금속 금과 은
비싸고 희귀한 중금속으로는 금과 은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반인은 금과 은을 건강에 해로운 물질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반지·목걸이·귀걸이·팔찌로 만들어 몸에 착용하고, 심지어 금을 먹기도 한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밥그릇과 숟가락 등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다. 녹이 슬지 않는 금속이라는 의미의 스테인리스 스틸은 철에 니켈과 크롬을 결합한 합금이다. 크롬과 니켈이 많게는 30%나 차지한다. 어떻게 보면 중금속 덩어리에 밥을 먹는 셈이지만 아무도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지 않는다. 크롬과 니켈은 중금속이지만 독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녹이 생기지 않을 만큼 화학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산성 음식이 아니라 염산을 스테인리스 스틸 밥그릇에 부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정도로 강하게 결합한 합금이다. 니켈과 크롬은 시계·반지·목걸이·귀걸이 등에 도금으로 사용하는데, 일부 사람에게서 피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철·구리·아연은 중금속이면서도 우리 생리작용에 필요한 영양소이기도 하다. 미량이지만 중금속인 코발트·망가니즈·몰리브데늄·셀레늄도 건강에 필요한 요소다. 중금속 티타늄은 나노물질로 만들면 탈취 작용 용도로 사용한다.
쓸모가 많은 중금속이 왜 일반인에게는 유해물질로 각인됐을까. 중금속은 자연상태에서 보통 단단한 암석의 미세 성분으로 존재한다. 사람과 격리된 상태라는 말이다. 인류는 이 가운데 쓸만한 금속을 골라 사용했다. 쓸모가 없다면 영원히 암석에 존재하는 불순물로 남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118종의 원소에서 기체와 비(非)금속, 경금속 등 30여 종을 뺀 나머지는 대부분 중금속이다. 이 가운데 인간이 사용하는 중금속은 40여 종 남짓이다.
자연 상태의 중금속은 사람에게 득이 돼지도, 해를 끼치지도 않는다. 산화가 돼서 전자를 잃은 상태 즉 이온화가 됐을 때 문제가 생긴다. 즉 '중금속 이온'은 다른 분자와 잘 결합하기 때문에 우리 몸에 들어오면 몸속 분자와 붙어 정상적인 생리작용을 깨뜨린다. 신경계에 문제를 일으키고, 혈액·폐·신장·간 등에 치명적인 독성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알츠하이머·파킨슨·다발성 경화증·암을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과거 중금속 중독으로 시작된 막연한 공포
일반인이 중금속 이온에 노출될만한 환경은 무엇일까. 1970년대까지 유연휘발유를 사용했다. 휘발유에 납 화합물을 섞은 것인데, 자동차 엔진의 노킹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유연휘발유는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는 물론 환경에도 해를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유연휘발유는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됐고 그 자리를 무연휘발유가 대체했다. 또 예전에 공장에서 땜질용으로 납을 사용했고, 가정에서 사용하는 양은냄비를 납으로 때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납 일부가 기화하면서 공중으로 퍼졌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납 중독'을 알게 됐다. 한때 수은 중독도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수은은 전지나 온도계 등에 사용됐고, 농촌에서는 농약 성분으로도 이용했다. 이 때문에 수은 중독 사고가 발생했지만, 수은 농약 사용이 금지된 지 오래다.
염색·도금 공장에서 배출하는 산업폐기물이나 폐수는 문제다. 그런 폐기물이나 폐수에 포함된 중금속은 화학적으로 반응성이 큰 상태이기 때문에 인체나 환경에 독성으로 작용한다. 즉 크롬·니켈 이온이 물에 녹아 있는 상태여서 그대로 자연에 흘려보내면 환경 오염을 초래한다. 이 환경오염으로 사람이 영향을 받은 사례가 이타이이타이병이다. 1910년경 일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1968년 원인을 찾은 끝에, 광산에서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배출한 폐광석을 통해 카드뮴이 강으로 유출됐고 이 물을 식수나 농업용수로 사용한 주민들에게 발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금속을 사용하는 공장의 노동자에게 직업상 건강 문제가 생길 수는 있으나, 일반인이 중금속 위험에 노출될 우려는 없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과거에 각인된 수은중독이나 납중독 사례로 지금까지 막연한 중금속 공포에 시달린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현재, 특히 국내 공장에는 집진 시설과 법규제가 잘 돼 있어서 중금속을 배출하지 않는다. 현재 일반인이 중금속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제품은 페인트류인데, 일반인이 페인트를 사용할 일이 요즘은 거의 없다. 자동차에 페인트를 사용하지만 워낙 안정적으로 결합한 상태라도 차량에서 페인트가 녹아내리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중국발 중금속 황사는 없다"
최근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중국발 황사에 묻어온다는 중금속이다. 무거운 중금속이 중국에서 한반도까지 날려올 수 있을까. 황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비사막 등지에서 발생한 모래 먼지를 말한다. 이 가운데 비교적 무거운 모래 먼지는 중국 내에서 가라앉고, 가벼운 모래 먼지가 더 높은 상공으로 올라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까지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 산업단지에서 발생한 중금속이 황사와 결합해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 얕은 구름은 지상에서 약 1km 높이에 있다. 중국 산업단지에서 나온 유해물질은 구름 높이를 넘지 않는다. 반면 황사는 구름보다 높은 상공에서 편서풍을 타고 이동한다. 중국의 중금속과 황사는 섞일 수 없는 상황이다. 황사에서 중금속이 검출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국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산이든 국산이든 황사 속 중금속은 건강에 유해하지 않을까. 이 교수는 "황사에 있는 중금속은 안전한 산화물 또는 황화물, 즉 돌가루 상태여서 화학적으로 안전한 상태다. 우리 몸에 들어온다고 해서 독성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람이 돌이나 금속을 만졌다고 건강에 피해를 입지 않는 것과 같다. 흡입해서 폐 기능이 나빠지지 않겠냐고 하는데, 그것은 유독 중금속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물질을 흡입해도 마찬가지다. 중금속이라고 해서 독성이 더 크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